[목회칼럼] 2021.09.05 육신의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

어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님에게 크게 혼 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웃 집에 톱을 빌려 오라는 심부름을 받고 저는 동생을 데리고 갔습니다. 때마침 그 집에서는  마당에 있는 나무에 그네를 달고 있었습니다. 저는 톱을 빌려 동생에게 집으로 가지고 가라고 시키고는 그네를 타고 놀다 집으로 왔습니다.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저를 보시고 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아버지께서 저에게 손바닥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두려움에 질려 손바닥을 내밀고 있으니, 아버지께서 저의 잘못을 지적 하시면서 몇 대 맞으면 좋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저는 “세 대요…”라고 답했고, 아버지는 딱 세 대를 때리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받은 유일한 체벌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큰 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체벌로 혼 난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아버지는 항상 두려운 분이었습니다. 자라면서 눈 한 번 제대로 맞춘 적이 없었고, 말대꾸를 제대로 한 적도 없었습니다. 장례식 후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네 형제가 다 그랬습니다. 아버님에게 제일 귀여움을 받고 자란 막내 동생도 아버지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철이 들면서 그 두려움은 아버지의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변했습니다. 무엇을 결정하고 선택하든,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질문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무슨 잘못을 하면 가장 먼저 ‘아버지가 아시면 어찌지?’라는 생각을 했고, 무엇인가를 성취 했을 때는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것을 가장 먼저 생각했습니다.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항상 옳으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항상 아버지라고 답 했습니다. 아들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그분을 실망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 까닭에 네 아들들이 일찍부터 객지 생활을 했지만 크게 빗나가거나 사고를 친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회고하다 보니, 저희 형제가 아버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마음 자세가 믿는 이들이 하나님께 대해 가져야 할 마음 자세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시고 또한 언제나 옳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지켜 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러르고 존경합니다. 우리에게 걸고 계시는 그분의 기대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라고 질문 합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고, 나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요, 하나님께서 실망하시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염려입니다.

이제 육신의 아버지는 당신의 소임을 다하고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하늘 아버지는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않으니, 이제는 더욱 돈실하게 하늘 아버지를 섬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육신의 아버지께서 저에게 남기신 가장 귀한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저만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 가장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