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21.04.04 ‘다시’의 은혜

우리 말에서 ‘부활’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도 부활로 상징되고, 씨앗에서 새싹이 나오는 것도 부활이라 불립니다. 고치를 열고 날아 오르는 나비를 보면서 우리는 부활을 생각하고,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를 통해서도 부활을 생각합니다. 죽을 병에 걸렸다가 완치되는 기쁨을 표현할 때면 “내가 부활했다!”고 말하고, 쇠락해 가던 사업이 회복되면 “내가 부활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부활’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어릴 적에 들은 이야기 중에 “미국은 ‘second chance’(재기의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다”라는 말이 기억 납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한 번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합니다. 미국의 상황도 변하고 있습니다. ‘다시’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숨이 막히는 겨울 공화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다가 왔을 때 우리는 다시 새벽이 찾아 올 것을 알기에 안심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마취가 깨이면 다시 정신을 찾을 것이라고 믿기에 안심하고 수술대에 눕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만일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든든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게 마지막이다!” 싶을 때면 조바심이 생기고 두려움도 생깁니다. “다시는 희망이 없다!” 싶을 때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단테의 <신곡>의 ‘지옥편’에 보면 입구에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희망을 버려라”라고 써 있습니다. ‘다시’의 기회가 없는 것이 바로 지옥의 상태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다시’의 기회가 영원히 박탈되는 순간이 죽음입니다. 죽기 이전까지는 무엇인가 ‘다시’ 해 볼 기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살다 보면 살아진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아도 살다 보면 ‘다시’ 기쁨이 찾아오고 잃었던 밥맛이 ‘다시’ 살아나고 오지 않던 잠이 ‘다시’ 찾아 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 생을 끝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은 ‘다시’의 기쁨을 선사해 주십니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다시’의 기회는 영영 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죽음 이후에도 ‘다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서 그 사건이 처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는 이들이 마지막 날에 그분처럼 부활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작은 부활’을 경험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 이후에 ‘다시’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마치 잠자리에 드는 사람처럼 혹은 시간이 지나면 마취에서 깨어날 것을 믿고 수술대에 오르는 사람처럼 평안할 수 있습니다. 아니, 죽음 이후에 ‘다시’ 주어지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알기에 소망과 기대감을 안고 죽음을 대합니다.

이것이 부활 주일에 그리고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을 때마다 기억해야 할 영적 진실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 든든합니다. 그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 서로에게 축복하며 인사 합니다. Happy E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