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20.11.22 내 마지막 음식

금요일 아침 일찍, 발신자 표시 없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 전화는
대개 로보콜이기 때문에 받지 않는데, 그 전화에 대해서는 뭔가 끌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받아 보니, 전에 섬기던 교회의 교인께서 거신
전화입니다. 오래도록 병치레를 하시던 남편께서 운명을 앞 두셨는데,
목사님을 찾으시니 한 번 와 주실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부부께서는
장기간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 오신 담임 목사님을 알지
못하여 저희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저는 담임목사님께 연락하여 허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급히 달려갔습니다.

임종 예배 때에 저는 성찬을 준비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나누신 것처럼, 이 땅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떠날 때
마지막으로 성찬을 받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성찬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처한 분들도 계시는데, 감사하게도 그
교우께서는 성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 말씀을 읽은
다음 성찬을 그분의 입에 넣어 드렸습니다. 그분은 감사히 성찬을 받아
들이셨고,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천주교회에 비해 개신교회는 성찬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즙에 사제가 축복하면 실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칩니다(‘화체론’, Trans-substantiation). 반면, 개신교회에서는
성찬 안에 주님께서 임재하신다고 가르치기도 하고(‘공재론’, Consubstantiation), 성찬은 주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상징론’, Symbolic Presence). 천주교회에서 화체론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많은 문제가 생겼기에 종교 개혁자들은 화체론을 배격했습니다.

화체론을 믿는 사람들은 성찬을 받지 못하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반면, 상징론을 믿는 사람들은 성찬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개신교인들이 성찬을 좀 더 무겁고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찬을 미신처럼 여기는 것도
좋지 않지만,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 달에
한 번 성찬을 나누는 연합감리교회의 전통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찬을 받을 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그동안 저의 신앙 경험과 목회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입니다.
이런 까닭에 임종의 자리에서 꼭 성찬을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저
자신에게도 마지막 먹는 음식이 성찬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의 신비와 은혜가 성찬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팬데믹으로 흩어져 있는 동안에 야외에서라도 성찬식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징론을 믿는 사람에게는 ‘뭐, 그럴 것까지
있나?’ 싶겠지만, 성찬의 신비와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렇게라도
해야지!’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 오전에 야외에 함께 모여 나누는 성찬의 자리에
주님의 임재가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