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20.09.27 추석 생각

오는 수요일(10월 1일)은 추석입니다. 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한국에서 지키던 절기와 풍습이 점점 잊혀져 갑니다. 하지만 설과 추석은
우리 1세 이민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정원에 커다란 밤 나무가 심겨 있는 집이
있습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봄 철에는 밤꽃 냄새가 진동하고 가을
철에는 군데군데 밤송이가 떨어져 있습니다. 제 고향 집 뒷산에 밤 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밤을 보면 고향을 생각하게 됩니다. 떨어진 밤이 썩기 전에
주어야 한다며 기역자로 굽어진 허리를 짊어지고 산을 뒤지고 다니시던
어머니 생각도 납니다.

며칠 전, 이른 새벽에 개를 산책 시키면서 그 집 앞을 지나는데
탐스러운 밤송이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어릴 때 했던 대로 밤송이를 발로
비볐습니다. 그랬더니 굵은 밤알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것을 집어
손에 들고 돌아오는데, 큰 횡재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와 칼로 겉
껍질을 깎아내니 상긋한 향기가 풍깁니다. 아내와 한 알 씩 나누어 먹으면서
그 향취를 즐겼습니다.

다 먹고 나니, 그제서야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뿔싸! 주인이나 이웃이 보았더라면 못 된 이웃으로 낙인 찍힐 뻔 했구나!”
싶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산책하며 매일 그 집 앞을 지나 다닙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요즈음에는 더 많은 밤송이들이 떨어져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강한 유혹을 느낍니다. 밤에 대한 욕구는 고향을 보고 싶은
욕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절대 손에 대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을 생각나게 해 주는 물건이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감과 밤이 그렇습니다. 고향 집 앞에 늘어서 있던 다섯 그루의 감나무는
우리의 놀이터였고 또한 가을과 겨울의 달콤한 간식이었습니다. 가을에
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의 성화에 밀려 뒷산에 올라가 밤을 줍곤 했습니다.
그러면 겨울 내내 구워 먹고 삶아 먹고 밥에 넣어 먹었습니다. 겨울 방학에
시골에 내려가 깊은 밤에 공부하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광에 보관해 두었던
홍시를 꺼내다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맛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러니 길가에 떨어져 있는 밤을 보고 욕심을 냈다고 탓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에 달려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홍시를 보면 저도
모르게 발길이 그리로 향합니다. 차마 따지는 못하고 눈요기만 하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잠시 고향을 그립니다.

“마음에 그릴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옳다면 저는 행복한 사람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돌아갈 영원한 고향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육신의 고향은 이 땅에 있지만, 영원한 고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땅의
고향에는 다시 돌아가 살 수 없지만, 장차 영원한 고향에 이를 것임을 알기에
추석을 맞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그리 서글프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해피 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