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20.05.24 조심스럽게, 하나씩!

호스피스 사역의 창시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제창한 이론
중에 ‘분노의 5단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암이나 치매 같은 병으로 인해
생존의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접할 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거치는 단계를
말합니다.

첫 단계는 ‘부인’(denial)입니다. ‘아닐 거야’ 혹은 ‘그럴 리가 없어’ 같은
생각으로 현실을 부정하려 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을 찾아 다니면서 second
opinion 혹은 third opinion을 찾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오진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처음 진단을 확인할 뿐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anger)입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왜
접니까?”라면서 분노를 쏟아 붓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팔자를
탓하거나 신세를 한탄합니다. 자신의 그릇된 생활 방식을 탓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타협’(bargaining)입니다. “어차피 잘 된 거야!” 혹은
“전화 위복이 되겠지!” 같은 생각으로 주어진 현실을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depression)입니다. 정서적으로 침체 되는
과정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수용’(acceptance)입니다.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단계입니다.

코비드-19 감염증으로 인해 모든 것이 차단 된 이후로 3개월이
되어갑니다. 돌아 보니, 우리도 이 과정을 거쳐 온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깎아 내렸습니다. 희생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가자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에게 분노를 쏟아 부었습니다. 한국에서
감염자가 한 참 치솟을 때는 우리도 은근한 차별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나머지 세 단계를 함께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태가
인류의 무분별한 소비와 폭식 문화로 인해 생겨났다는 반성이 나오는 것은
타협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증명하고, 미국인 세 명 중 한 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는 네 번째 단계를 지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사태가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고 여기고 그에 대해
대비하고 있으니 이제는 수용의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도 버지니아 연회의 지침에 따라 ‘건강한 교회를 위한
팀’(Healthy Church Team, 위원장: 이백호)을 구성했습니다. 이 사태가 오래
지속될 것이며 모이는 예배를 시작한다 해도 한 동안 영상 예배와 같이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팀입니다. 백신이
연말이나 연초에 나온다는 희망적인 뉴스가 있지만, 그것이 대량으로
보급되어 정상 생활이 가능해지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감염사태가 확산되지 않게 하면서 꼭 필요한 활동을 서서히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일은 철저하게 안전 수칙을 지키면 감염자와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감염에 속수무책이라면 정말
두려운 일인데, 안전 수칙을 지키기만 하면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지킬 수
있으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하나씩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준비를 시작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