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20.04.26 참, 특별한 장례식

지난 월요일, 위암 말기로 인해 투병 하시던 고 허용희 교우님의 장례 예배가 있었습니다. 따님 부부와 두 손녀와 함께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가셨기 때문에 그분을 아는 교우들이 많지 않으십니다.

요즈음 코비드-19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장의사(Funeral Home)가 매우 분주합니다. 장의사 디렉터에 의하면, 코비드-19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곧바로 화장을 하여 유해만을 가족에게 넘겨 준다고 합니다. 치료 과정 중에도 완전한 격리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합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외로운 임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코비드-19으로 인한 사망이 아닌 경우에는 한 시간 동안의 뷰잉과 하관 절차만을 허락한다고 했습니다. 예배실에서의 장례 예배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뷰잉과 하관 예배에는 10명 이하의 참석자만 허락되고, 참석자들은 6피트의 거리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장례식을 많이 집전했지만, 이런 장례식은 처음이었습니다. 모인 가족이 열명이 넘어서 일부는 멀리서 지켜 보아야 했습니다. 하관 예배를 마친 후에 아드님이 제게 그러십니다. “어머니께서 코비드-19이 오기 전에도 당신이 죽으면 목사님만 모시고 가족들끼리 장례식을 하라고 하셨어요. 어머님 바라시던 대로 된 겁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도 한 번, 고인이 가족만의 장례식을 고집하여 ‘작은 장례식’을 집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도 이상하고 어색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고 참석한 사람들도 그렇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고인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에 조객들이 모이는 이유는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뜻보다는 유가족에 대한 위로의 뜻이 더 큽니다. 죽은 사람에게야 앉을 자리 없이 조객들이 운집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다만, 슬픔에 잠긴 가족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고 넉넉히 품어줄 수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하관 예배가 끝나고 돌아서 가는 가족들의 뒷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습니다.

코비드-19 사태가 시작된 후에 교우 중 두 분이 수술을 받으셨고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과거 같으면 수술실에 찾아가 함께 기도하고, 임종을 맞으신 분을 위해 임종 예배도 드리고, 임종한 후에는 교우들과 가정에 모여 위로 예배도 드려야 했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그런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목사로서는 아주 불편합니다. 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듯한 부담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보균자일 수 있다’는 전제에서 행동해야 할 때이니,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탁 드립니다. 제발, 아프지 마세요. 혹시 아프시면 주저 말고 연락 주세요. 제 할 일이 몇 안 되지만, 그것이라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