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20.04.05 중보의 시간

나 아닌 혹은 다른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중보기도’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에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염려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꼭 그렇다 할 수는 없습니다. 죄로 인해 원수가 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중보자의 은혜 안에서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디트리히 본회퍼는 <성도의 공동 생활>이라는 책에서 중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중보기도를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동 생활에서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리는 곳”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지체들 상호간의 중보기도를 힘입어 살아가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 공동체는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중보기도는 제사장 공동체로 세움 받은 교회가 이 세상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중보기도는 언제나 중요합니다만,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고 있는 지금에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 숙이고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모두들 집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 이 상황에서 생존에 기본적인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일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그들을 위해 중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속한 버지니아 연회 샤마 루이스 감독님은 매일 정오에 일손을 멈추고 기도 하자고 요청 하셨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기도의 품에 나와 내 가족만 담겨 있다면 하나님 앞에 그리고 이웃 앞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집안에 안전하게 머물러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면,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 해야 합니다.

이 말에 공감 하신다면, 중보기도를 위한 시간을 따로 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늘상 기도하는 시간에 중보기도 시간을 더하십시오. 그리고 요일마다 중보 기도의 대상을 정해 두십시오. 예를 들면, 월요일에는 자신과 가족과 친지들, 화요일에는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 수요일에는 의사와 간호사, 경찰과 군인들, 목요일에는 정치 지도자들, 금요일에는 코로나에 감염된 환자들과 그 가족들, 토요일에는 선교사들, 주일에는 모든 교회들을 나누어 기도하는 식입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자신에게 좀 더 중요한 대상들을 위해 더 자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매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기도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부르고 그 사람을 축복해 주는 것으로도 충분한 중보기도가 됩니다. 문제는 너무나 크기에 나의 중보기도는 너무나 작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큰 파동을 일으키듯 우리의 작은 기도가 큰 일을 이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