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11.03 11월에 대한 생각

고 황현산 교수의 <사소한 부탁>에 보면 10월과 11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0월은 5월과 함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달입니다. 5월은 꽃이 만개하기 때문일 것이고, 10월은 열매가 무르익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날씨도 좋아서 결혼식이 두 달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때가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주말에 결혼식 부조를 위해 두 세 곳을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5월과 10월은 노래나 시에도 자주 나옵니다.

그것에 비하면 11월은 10월과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11월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시나 노래에도 11월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12월은 연말이고 겨울이어서 그 나름대로의 정취가 있습니다. 10월과 12월 사이에 낀 11월은 그냥 지나가는 달입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으로 한 해의 모든 즐거움을 끝내고 그냥 저냥 지내다가 연말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 11월에 있어서 조금 낫습니다만, 그것조차도 12월에 가까이 있어서 11월의 색깔과는 다릅니다.

11월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갈색 혹은 회색에 가까울 것입니다. 울긋불긋했던 10월과는 사뭇 다릅니다. 10월은 추수 때의 곡식 창고처럼 가득 찬 느낌이라면, 11월은 이파리를 다 털어 버리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텅 빈 느낌입니다. 기온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냥 지내기에는 좀 쌀쌀하고 난방을 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도, 몸도 춥습니다. 마음이 추우니 외로움과 쓸쓸한 감정이 더 깊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1월을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단풍 가득한 나무도 좋지만, 이파리를 다 털어내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더 좋습니다. 누런 이삭으로 가득한 논의 모습도 좋지만, 벼가 다 베어지고 휑 해진 들판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좋습니다. 이 즈음에 제 고향에 가면 감나무에는 꼭대기에 홍시 몇 개 남아 있고 이곳 저곳에서 낙엽을 태우는 연기가 피어 나고 들판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정겨웠습니다. 쌀쌀한 저녁 날씨에 옷깃을 여미고 집으로 가면 어머니표 밥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11월에 고향 생각을 가장 많이 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고향을 생각하게 합니다. 앙상한 나무를 보아도, 낙엽 태우는 모습을 보아도, 떨어진 밤송이를 보아도, 가지끝에 앉아 홍시를 쪼아 먹는 새를 보아도, 고향 생각이 납니다. 아침 저녁에 쌀쌀한 기운을 느껴도 고향의 아랫목이 생각나고, 텅 빈 들판을 보아도 고향이 생각납니다.

신앙인에게 이 땅의 고향은 영원한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매개입니다. 우리가 원래 있던 곳은 이 땅의 고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고향을 생각합니다. 식탁 앞에 앉았을 때 하나님 나라에서의 잔치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하나님 나라의 찬양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합니다.

이 땅의 고향 그리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되돌이킬 수 없지만, 영원한 고향은 앞으로 우리가 이를 곳이며 영원히 누릴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젠 뒤를 돌아보며 살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내다 보면서 살 일입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싯구처럼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