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10.13 두 가지 이미지

지난 토요일 새벽에 어머님의 부음을 받은 이후로 정신 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일 저녁에 도착하여 가족들과 함께 입관 예배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님 시신을 뵈었습니다. 뇌경색으로 시작된 치매가 깊어지면서 어머님의 육신은 서서히 쪼그라들더니 결국 뼈에 가죽을 입힌 것처럼 앙상한 모습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표정 만큼은 평안해 보였습니다. 마지막 임종을 지켰던 동생은 어머니께서 잠을 자듯 평안하게 운명 하셨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생애를 생각하면 두 가지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십자가의 이미지입니다. 어머님의 삶은 십자가를 몸으로 실천하는 삶이었습니다. 5년 동안 어머니를 돌보셨던 요양원 직원들이 그러십니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님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서 어머님이 어떻게 살아 오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족들과 친척들의 증언이요 교회 식구들의 증언입니다. 홀로 남겨진 아버님은 “너희 어머니는 배운 게 없었어도 어떤 철학자나 사상가 못지 않은 지혜가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지혜는 세상에서 잘 되는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지혜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가느다랗고 길다란 하얀 양초입니다. 어릴 때 그 양초에 불을 붙여 놓고 늦은 밤까지 지새는 일이 있었습니다. 곧은 자태의 양초가 불의 열기로 조금씩 녹아들어 마지막에는 바닥에 고인 촛물을 태우고 퍼럭 꺼집니다. 몇 시간 만에 그 멋진 양초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타다 만 검은 심지만 남습니다. 어머니의 일생도 사랑으로 주변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입관 때에 본 그분의 시신은 타고 남은 심지와 같았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음성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의 손을 더 이상 만질 수 없지만, 이런 어머니를 가졌었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를 드립니다. 어머니가 모든 기억을 잃은 지난 5년 동안 정신적으로는 이미 임종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망각의 세계 안에 깊이 숨어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만나려고 찾아가도 만나지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육신 마져도 없으니, 허망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제는 그분에게서 받았던 사랑의 기억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들 언젠가 당하는 일이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저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만, 세상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그동안 저는 많은 분들의 임종을 보았고 장례를 집전 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오롯이 상주의 입장에서 모든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동안에 서 있던 방향과 정 반대의 방향에 서 보았던 것입니다. 상주의 입장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저는 많은 것들을 새롭게 깨닫고 느꼈습니다. 제가 집례자의 입장에만 서 있었기에 보지 못했던 것 그리고 알지 못했던 것이 적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동안에도 장례를 섬길 때 최선을 다했었지만, 앞으로는 유가족의 마음을 더 잘 살피고 장례를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교우들께 감사 드립니다. 이런 때일수록 영적인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남은 정리를 마치고 돌아가 어머님께 하듯 여러분을 정성껏 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