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10.06 갑작스러운 인사

교우들께서 이 글을 읽으실 때 저는 한국행 비행기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10년 넘게 치매를 앓으시던 어머니께서 하나님 품에 안기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밤, 막 잠이 들려 하는데 막내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께서 미음만 들고 계셨기에 때가 가까이 온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전화 벨 소리에 깨어 나는 순간 직감했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동생이 울먹이며 어머니께서 방금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아버님과 막내 아들이 요양원을 방문한 시간에 떠나신 것입니다.

전화를 끊고 아내 몰래 예배당으로 향했습니다. 어두운 예배당에 홀로 앉아서 어머님을 위해 기도 올리고 또한 어머니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저에게 당신의 목숨이라도 주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던 분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제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어머님 덕분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도 모두 그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저의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낳으신 분입니다.

치매가 깊어져서 저를 알아 보지 못한 것이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마음에서 서서히 어머님을 보내 드렸습니다. “엄마”라고 불러줄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육신의 껍데기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인 줄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헛헛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어머니의 존재는 그렇게 큰 것인가 봅니다.

주일 예배를 다 마치고 월요일 아침에 떠날 생각을 하고 5일장으로 할 수 없느냐고 형제들에게 물어보니, 한국식 장례 문화에서 5일장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려면 월요일에 맞추어 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들로서의 도리와 목사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자, 아내가 대신 결단을 내려 주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일 예배를 인도하는 것도 좋지 않고 장례식을 보지 못하면 평생 후회하게 된다면서 토요일 비행기로 가자고 했습니다. 이럴 때는 당사자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이 더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부디, 저의 부재가 교우 여러분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저희 부부를 대신하여 가을 피크닉과 가을 소풍을 마음껏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어머님 장례를 향하는 저희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시는 방법입니다. 다만, 모든 장례 절차와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만 해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