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05.26 우리가 교회 될 때

우리 몸의 각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합니다. 몸의 한 지체가 병들거나 다치면 그제서야 한 몸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손의 통증은 손만의 문제가 아니고 몸 전체의 문제입니다. 모든 지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치통으로 인해 고생할 때면 “치아가 좋지 않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몸이 편치 않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몸에 비유했습니다. 교인 각 사람은 몸의 지체와 같고, 예수님은 몸의 머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교회도 평안할 때에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한 지체에게 어려움이 생겨나면 그제서야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한 지체에게 어려움이 생겼는데 다른 지체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몸이 아니라면 교회도 아닙니다.

얼마 전,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싱글 마더 한 분이 급한 수술을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아들을 돌보아 주고 간호해 줄만한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습니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속회 식구들과
교우들이 시간표를 짜서 나흘 동안의 입원과 그 이후의 회복 과정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병원에서 간호해 주셨고, 한 가정은 아들을 집에 들여 며칠 동안 등교와 모든 일들을 책임져 주셨으며, 어떤 분들은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도 저도 못하신 분들은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콧날이 시큰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속으로 ‘그렇지, 이게 교회지!’ 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주 자폐를 가진 청년이 예배에 왔다가 중간에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너무 자주 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의 어머니가 다쳐서 몇 주일째 교회에 나오지 못하다 보니, 예배에 나오고 싶다는 그 청년을 속장님이 데려 온 것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자제를 잘 했는데, 혼자 있다 보니 자신도 어쩌지 못했던가 봅니다. 예배 진행에 심한 방해가 될 정도로 자주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를 데려오신 속장님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저는 예배 중간에 그 청년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청년이 한 시간 내내 소리를 내어도 모두가 참고 견디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할 인내력이 없으니 한 몸이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교회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점잖게 차려 입고 정숙하게 앉아서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예배 드리고 헤어지는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룬 공동체입니다.
그렇기에 한 지체가 아프면 그것을 나누어 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교회가 되는 것이고, 그럴 때 우리는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
교회가 진정한 몸으로서 자라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