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05.12 어머니 생각

지난 8일은 한국에서 ‘어버이날’로 지키는 날이고, 오늘은 미국에서 Mother’s Day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처음에는 ‘어머니날’이었는데, 아버지들이 힘을 모아(?) ‘어버이날’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미국에는 한국과 달리 Father’s Day가 따로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 보니, 미국에서 어머니날이 국가 지정 휴일로 정해진 것이 1914년이었는데, 아버지날이 지정된 것은 그로부터
58년 후인 1972년의 일이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산행 중에 어느 교우께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를 말씀하시면서 “어머니가 위대한 것은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보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감수성을 따라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최대 9개월 동안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 본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태중에서 뛰고 있던 심장 하나가 바깥으로 나와 뛰고 있는 것이니, 아버지에게는 없는 연대감이 어머니에게 있는 것입니다.

제 어머니는 꿈을 잘 꾸셨습니다. 꿈을 많이 꾸셨다는 뜻이 아니라 꿈을 통해 자식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감하곤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씰 데 없는…..”
하시면서 무시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어머니의 꿈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셨습니다. 나중에는 “무시 헐 게 아니여. 신통한 구석이 있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자식과 연결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어서 자식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머니께서 아셨던 것입니다.

제가 도시에서 자취 생활 할 때에는 전화도 쉽지 않았고 편지도 오고 가는 데 한 주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무슨 변화가 있을 때마다 짐을 싸들고 찾아 오셨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거나 자꾸만 제 생각이 나면 휑하니 다녀 가셨습니다. 완행 버스를 타고 오실 때면 멀미를 하셔서 눈이 퀭해지셨습니다. 그럼에도 고개가 꺽이도록 짐을 이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렇게 퍼주기만 하시더니 이제는 정신은 모두 빠져 나가고 껍데기만 남으셨습니다. 머지 않아 그 껍데기조차도 볼 수 없게 되겠지요.

전화를 하실 때마다 “몸 건강허냐? 애덜은? 에미헌티 잘 허지? 그럼 됐다”라고 서둘러 끊으시던 어머니의 음성이 그립습니다. 그분은 세상 모두가 나에게 등 돌려도 나를 품어 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시고 이제 그 사랑을 알만 하니 제 곁을 떠나 가려 하십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의 소임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까지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고……

그래서 허공에 대고 말해 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