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04.28 무죄 추정의 원칙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 부부가 한국에서 종합 검진을 했는데, 사모님에게서 자궁경부암 징후가 발견되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조직 검사를 하고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주일 동안 기다리는데, 그 동안에 그 목사님 부부는 큰 근심에 빠졌습니다. 암 치료로 인한 걱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자궁경부암의 발생 원인은 주로 난잡한 성생활에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혹시나 사람들이 자신들을 의심할까 두려웠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성적으로 순결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자궁경부암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너그럽지 못합니다.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덮어놓고 의심부터 하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소식을 교인들이 전해 듣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두려워졌습니다. 엉뚱한 상상을 하고 의심을 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럴 경우 찾아 다니면서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오해를 그대로 참고 있을 수도 없다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정밀 검사 결과에서 암이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두 분은 한 주일 동안의 근심에서 해방되기는 했지만, 자신의 목회와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암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교인들 중에 “그분들이 그럴 리 없어! 다른 이유 때문에 암이 생겼겠지!”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그럼 그렇지! 당신도 위선자였구나!” 라고 의심할 교인들이 더 많으면 어쩌나 싶었다고 합니다. 목회자들의 성적 스캔들이 자주 매스컴에 오르 내리고 있으니 그렇게 의심한다고 해도 뭐라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불행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는 선의보다 의심부터 하고 보는 악의가 우리 모두에게 널리 그리고 깊이 퍼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했습니다. 그것도 역시 우리의 죄성의 증거입니다.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그럴 리가 없어! 그럴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런 사람이었어?”라고 반응하는 것이 우리의 비뚤어진 심성입니다.

법정 용어 중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죄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법 사상입니다. 확실한 증거 없이 심증만 가지고 의심하거나 단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열 사람의 범법자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쓰는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병든 마음은 반대로 유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 움직입니다. 누구에 대해 어떤 의심이 들 때 그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의심에 대한 증거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전까지는 자신의 의심을 단정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사실 확인’(fact finding)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그런 확인 과정 없이 함부로 의심하고 단정 하기를 좋아 합니다. 그런 의심에 근거하여
혼자서 소설을 씁니다. 그리고 그 말을 퍼뜨립니다. 그 말을 전해 듣는 당사자는 그로 인해 마음이 갈기갈기 찢깁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말은 의심하고 단정하고 정죄하는 경향을 경계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함부로 의심하고 단정하고 정죄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카더라’ 통신에 귀를 기우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 아닌 한 할 수 있는대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아니, 분명한 증거가 있어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헤아려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기를 소망하는 아침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