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04.21 부활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천주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십자가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을 ‘십자고상’(十字苦像)이라고 부릅니다.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고난을 묵상하라는 뜻입니다.

종교 개혁 이후에 개신교회는 십자고상을 버렸습니다. 첫쨰는 우상숭배로 이끌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예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은 신성하게 취급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그 선을 넘어서기가 매우 쉽습니다. 둘째는 우리의 구원을 완성한 것은 부활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신교회에서는 비어 있는 십자가를 사용합니다. 그것조차도 우상숭배로 여기고 사용하지 않는 교파도 있습니다.

고난을 중시하는 천주교회는 ‘사순절’이라는 절기를 만들어서 부활 주일 전 40일 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그 뜻은 매우 좋았습니다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전통은 많이 오용되었습니다. 그 예가 Mardi Gras 즉 Fat Tuesday입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방탕의 화요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에 지나친 금욕을 강요당했기에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에 진탕 먹고 취하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부활주일 예배가 영적 생활의 끝으로 오인되었다는데 있었습니다. 사순절 동안에 치열하게 영적 생활을 해 오다가 부활 주일이 지난 다음에는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부활 주일이 영적 생활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된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 그리고 다른 여러 문제들로 인해 종교 개혁자들은 사순절의 전통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부활 주일을 영적 생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으로 회복시키려 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아주 잘 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개신교회는 십자가와 고난을 너무 경시하는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금요일의 죽음과 토요일의 무덤을 통과하여 부활의 영광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천주교회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몰두했고, 개신교회는 부활의 아침에만 몰두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무덤에서의 부활은 복음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입니다. 죽음 없이 부활 없고, 십자가 없이 영광 없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에서의 희생은 미완성이었을 것입니다. 둘 중 어느 하나를 경시하면 안 됩니다. 둘 모두를 무겁게 대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개신교회에서 사순절을 회복시킨 것은 잘 한 일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아침을 맞기 전에 금요일과 토요일을 지나야 합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은 또한 부활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고난 주간에 새벽기도회로 모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 주일 후 한 주간 동안 더 새벽기도회로 모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부활을 묵상하는 것은 동일하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빌 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