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03.24 인간의 삼차 방정식과 하나님의 고차 방정식

얼마 전, 어느 포럼에서 부름을 받아 “성서는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강의 말미에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들 결혼식 날을 잡아 놓고 그 날에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은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날에 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도 있을 터인데 자기만 생각하고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기도해야 옳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자기 좋을 대로만 기도하고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자기에게 불리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을 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남들이야 어찌 되었든 내 아들 결혼식만 잘 되면 돼”라는 심정으로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한 가지 행동으로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인간의 삼차 방정식과 하나님의 고차 방정식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삼차 방정식 이상을 풀 수 없습니다. 그 이상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내게 좋은 것이 다른 사람에도 좋게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고차 방정식으로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다스림 아래에서는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불행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신비한 방식으로 한 가지 일로써 모든 사람에게 행복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아들의 결혼식 날에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해서 정말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 날에 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유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만일 내가 기도한대로 응답되지 않았다면, 비가 오는 중에 결혼식을 해도 무방하거나 혹은 그것이 내게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우리에게 다른 것이 더 좋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담대하게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면 그 응답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담대하게 기도 하면서도 하나님이 다른 처분을 내리실 것에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내가 지금 나에게 좋다고 생각되는 것이 실은 좋지 않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내게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구하되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론으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거듭된 경험을 통해 체득해야 할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체득하고 나면 어떤 상황에서도 초조하거나 절박함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담히 행할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이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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