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02.24 높은 기준, 넓은 사랑

교회는 도덕성에 있어서는 세상보다 높은 기준을 지켜야 하고, 사랑에 있어서는 세상보다 넓은 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모순이고 역설입니다. 도덕성에 있어서 높은 기준을 지켜려 하면 편협해지거나 완고해질 수 있고, 사랑을 따라 행하다 보면 도덕적 기준을 양보하게 됩니다. 인간은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둘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더 균형과 조화를 지키도록 힘써야 합니다.

예컨대, 세상에서는 이혼을 더 이상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상황과 조건만 맞으면 법적 절차를 따라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혼을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간적인 편의와 조건에 따라 함부로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할 수 있는 한 피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혼을 경험한 사람을 정죄하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처 받은 사람들로서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높은 기준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혼을 겪은 사람들을 정죄하고 억압하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반면, 그런 분들에 대한 사랑의 배려로 인해 도덕적 기준을 낮추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결혼과 이혼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계속 유지하면서 이혼을 겪은 사람들을 돌보고 살펴야 합니다.

성소수자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교회로 하여금 결혼과 성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포기하고 모든 형태의 성적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성적 지향성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 보면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세상보다 더 넓은 사랑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과 성에 대한 높은 기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세상에서 교회에게 요구하는 것은 ‘고쳐지지 않는’ 성소수자들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성적 선택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성적 선택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다른 사람들의 성적 선택에 간섭할 권리가 없습니다. 다만,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결혼과 성에 대한 높은 기준을 지켜야 하고, 믿는 이들은 그 기준을 자신들의 삶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결혼과 성에 대한 성경의 기준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고 폭행을 가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결혼과 성에 대한 높은 기준을 지키기를 원한다면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행에 대해 먼저 절연 선언을 해야 합니다. 미워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기준도 지키고 사랑도 행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속한 연합감리교회는 특별 총회를 열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결혼과 성 문제에 대해 교회가 높은 기준과 넓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