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9.01.20 누가 주인인가?

이미 알려 드린 것처럼,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개인 수양회 시간을 갖고 돌아 왔습니다. 원래 금요일에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토요일에 Bi-district Training Day에서 강의하기로 되어
있어서 하루 일찍 돌아왔습니다.

때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매일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충분한
시간을 내어 하나님과의 밀월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꼭 기도원에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텅 빈 예배실에 와서 한 나절을 보내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기도의 시간을 수 많은 말로 채우기 보다는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열고 머물러 있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도록 나를 완전히 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하시든 온전히 내맡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기도원을 찾아 며칠 동안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런 경우에는 내가 주체가 되고 하나님은 객체가 됩니다.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기도하는 내내 하나님은 ‘공격 당하는’ 처지에 머물러 계십니다.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고 내가 객체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로써 내가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습격’하시도록 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한 기도는 이런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평신도 뿐 아니라 목회자들 까지도 이런 기도의 시간을 두려워합니다. 늘 하나님을 찾는다고 하지만 실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하나님을 대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송구영신 예배에서 읽었던 존 웨슬리의 ‘언약의 기도’를 기억하시나요? 그 기도문에서 존 웨슬리는 하나님께,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낮추고 싶으시면 낮추시고 높이고 싶으시면 높이시라고,
영화롭게 하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고 고난을 주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라고 기도합니다. 반면, 우리는 높여만 주시라고, 영광만 주시라고, 형통만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부려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하나님 처분에 맡기게 해 달라는 기도는 잘 하지 않을 뿐더러 하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우리 자신보다 더 간절히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낮추신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기에 그렇게 하십니다. 그런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 자신을 활짝
열고 하나님 손에 맡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도 중에 더욱 힘쓸 일입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