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8.12.30 우리의 자신감의 근거

얼마 전, 어느 교우님과 나눈 대화의 일부를 여러분과 나눕니다. 그분은 사정 상 자주 홀로 예배에 나오십니다. 전에는 대형 교회를 다니셨고 잠시 동안 미국 교회에 다니시다가 우리 교회로 오셨습니다. 그 전에도 대부분 홀로 예배 드렸습니다.

과거에 다니던 교회가 모두 대형 교회였기에 홀로 예배의 자리에 앉아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많다 보니 홀로 앉아 예배 드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또한 자신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로 오고 나서 처음에는 매우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짐작이 됩니다.

하나는 회중의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담한 크기의 예배실에서 예배 드리기에 전체 회중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대형 교회에서는 회중이 많기 때문에 군중 속에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 교회 예배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없는 듯이 예배 드리고 갈 수가 없습니다. 또한 대다수가 부부 동반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홀로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합니다.

다른 하나는 교인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모든 교우들이 서로를 열고 사귀기를 격려해 왔습니다. 그래서 처음 오시는 분들이 따뜻하고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적인 영역에 대해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유별난 ‘참견 병’ 때문입니다. 당사자가 자신의 사정을 말해 줄 때까지 기다려 주면 좋겠는데, “왜 혼자 오셨어요?” 혹은 “혼자 사세요?”같은 질문을 무심히 던집니다. 자신의 사생활을 열어 보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아내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장을 보러 가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면서 곁눈질로 카트 안에 있는 물건들을 스캔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뼛속 깊이 스며 있는 ‘참견 병’입니다. 그 병 때문에 우리는 우리와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면 궁금증을 참지 못합니다. 그 질문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불편을 주는지 잠시만 생각해 보면 알 터인데, 너무도 무심하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교우들에게 부탁 드립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넉넉한 품으로 품도록 노력하십시다. 궁금증이 생기더라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줍시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다른 길로 가는 사람이 있을 때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품어 주십시다.

반면, 어떤 면에서든 자신이 소수자라고 생각되어 위축감을 느끼는 교우들께 부탁 드립니다. 두려워 하지 마시고 자신을 활짝 여십시오. 어떤 사정에 있든지 그것으로 인해 위축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본질은 우리의 사정에 있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지음 받았다는 사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 오직 그것 만이 우리의 자신감의 근거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