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8.11.25 속회 편성에 대해

추수감사절을 잘 지내셨습니까? 저희 가정은 미국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뉴저지에 있는 처남 가정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그동안에는 외로운 교우 들을 초청하여 시간을 보냈었는데,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떠나 보았습니다. 전에는 추수감사절이 왠지 ‘우리 명절’ 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제 이민 생활의 연조가 깊어져서 그런지 조금씩 ‘우리 명절’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저는 속회를 재배정 하는 문제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교우들의 형편을 잘 아는 몇몇 교우들과 함께 일차적으로 속회 배정을 해 놓고 부분적으로 조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우들께서는 이런 계기에 새로운 교인들과 만나 사귐이 넓어지기를 기대하십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사귀는 것이 쉽지 않은 분들도 계십니다. 또한 신앙의 색깔이나 개인적인 개성으로 인해 잘 융화될 수 있는 조합이 있고 그렇지 않은 조합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다 고려 하여 속회를 재편하려니 때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이 과정에서 속회에 참여하시는 모든 교우들께 연락을 드리면 좋을 터인데,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아마도 ‘누가 나의 속장이 될까?’ 혹은 ‘누가 내 속회에 들어오게 될까?’ 하는 의문으로 인해 궁금한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 모두에게 가장 적절한 속회를 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 드립니다. 하지만 여러 교인들이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100% 만족스러운 구성은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100% 만족스러운 속회 구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게 편한 사람들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된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울지 모르지만 속회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별로 유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낯선 사람들로만 구성해야 할까요? 그것도 역시 영적 성장을 위해서 유익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인간적인 연약함이 있음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익숙함은 필요할 것입니다. 동시에 영적 발돋움을 위해 어느 정도의 낯선 요소도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속회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교우들에게서 들은 몇 말씀이 저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교회에서 어떻게 배정 하든 저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씀은 늘 위로가 됩니다. “이번 기회에 새로운 교인들을 만나서 사귈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씀도 감사했습니다. 또 어떤 교우께서는 “지난 속회에서 저희 속회원들이 속장님을 잘 도와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면 속장님을 잘 도와서 은혜로운 속회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제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부분적인 조정이 끝나면 다음 주 즈음에 먼저 속장님들에게 알릴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속회에 참여하시는 교우들께도 알리겠습니다. 가급적이면 편성된 그대로 받아 주시고, 혹시 조정이 필요하시면 그 이후에도 최대한 맞추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속회는 언제든 조정 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하시고 새 출발에 기꺼이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