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8.11.11 나그네와 11월

얼마 전에 작고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수필집 <밤이 선생이다>에는 “11월 예찬”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작가들의 글에서 10월은 자주 언급되는데 반하여 11월은 거의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데, 자신은 11월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저도 10월보다 11월이 더 좋습니다. 그래서 ‘시월의 마지막 밤’이 지나는 것이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제 고향 풍경을 떠올리려 하면 11월의 텅 빈 들판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제 고향 집에 감나무가 많았는데, 노란 감으로 가득한 모습보다는 잎이 다 떨어지고 꼭대기에 까치밥 몇 개 남은 모습이 더 그립습니다. 도시에서 지내다가 고향에 내려가 텅 빈 들판을 바라보노라면 제 마음에 깊은 안식이 들어차는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낙엽이 썩어가는 냄새도 좋고, 쌀쌀한 공기도 좋습니다.
가득 찬 것도 좋지만, 텅 비어 있는 모습이 더 좋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베드로전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믿는 자들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우리 이민자들은 모두 나그네로서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나그네인 이유는 참된 고향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잠시 머물러 있다가 다시 떠날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에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지나치게 집착 해서도 안 됩니다. 주어진 기간 동안 머물다가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11월은 ‘나그네의 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훌훌 털어버리는 나무처럼 나그네도 언젠가 떠날 것을 생각하며 털어 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박목월 선생의 시 ‘나그네’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박목월 선생은 아주 신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습니다. 박두진 선생은 펄펄 끓는 열정을 시로 표현한 신앙이었다면, 박목월
선생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정서로 자신의 신앙관을 표현했습니다. ‘나그네’는 그분의 신앙관과 인생관을 담은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추수감사일이 한 주간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추수감사절을 시작한 청교도들의 마음이 이랬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고향이 하늘에 있다고 믿고, 이 땅에서 주어진 기간 동안 성실하게 살기를
힘썼습니다. 많이 주시면 감사하고, 적게 주셔도 감사했습니다. 언젠가는 다 두고 떠나야 할 곳이기에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낯선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이번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11월에 맞는 정서로, 나그네의 심정으로 베풀고 나누고 감사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