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8.08.19 궁해야 통한다

우리 모두는 모든 면에서 건강하고 여유롭고 넉넉한 상태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그런 상태를 만들고 그런 상태 안에 머물러 살아가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 있다가 잠시라도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되면 “아,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만, 물질적으로 평안하고 안정되고 여유로운 상태에 한 가지 큰 약점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과 노력을 넘어서는 신비한 은총의 사건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상태에 대한 만족감이 그 이상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의 무엇을 바란다고 해도 절실하게 구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아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기치 않았던 은총의 순간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것이 물질적인 안전과 풍요가 만들어 주는 권태감의 주요 원인입니다.

반면, 물질적으로 궁핍하거나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모두가 꺼리는 상황입니다.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은총의 개입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해법이 없기에 하늘을 우러러 절박하게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절박한 호소에 대해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은총의 순간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물질적인 결핍에서 오는 고통을 상쇄 하고도 남습니다.

바울 사도가 “내가 약할 그 때에 내가 오히려 강합니다”(고후 12:10)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연약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합니다. 그러면 육신적인 연약함을 넘어서는 신비한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질적으로 궁핍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합니다. 그러면 신비한 손길로 채우시는 이적을 경험합니다. 인간적으로 모든 길이 막혔을 때 하늘로 솟아날 길을 찾습니다. 그런 이적을 경험할 때면 모든 근심과 염려가 사라지고 영적 황홀감을 맛보게
됩니다.

지난 주간에 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에는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고군분투 하는 목회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슴 찡하게 하는 은총의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대형교회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이적들이 그들에게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 편안한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신비한 일들이 그들에게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궁해야만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건강 면에서나 물질적인 면에서 궁한 상황에 있습니까?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적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혹시 건강 면에서나 물질적인 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으십니까? 그 상황에 감사하는 한 편,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영적으로는 매우 불리합니다. 영적 잠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가?’라는 회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해 스스로 궁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이 가을에는 궁해지십시다. 그리하여 은총의 순간을 더 자주 경험하며 사십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