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8.08.05 와싱톤사귐의교회 문화 세우기 2: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기”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의 종교입니다. 홀로 수도 정진하는 종교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한 몸처럼 연합하여 함께 자라가며 함께 섬기는 종교입니다. ‘나 홀로의 종교’는 속 편하고 맘 편한 선택은 될지 몰라도 그런 종교로는 진정한 믿음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옆으로’ 성도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입증되어야 하고, 이웃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정화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교회로 모이는 것은 필수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눈의 역할과 입의 역할과 발의 역할이 각각 다르듯, 교회로 모인 사람들은 서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에 따라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섬겨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어떤 사람은 큰 일을 맡고 어떤 사람은 작은 일을 맡습니다. 어떤 사람은 빛나 보이고 어떤 사람의 일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모두 다 요긴합니다. 오히려 약해 보이고 드러나 보이지 않는 일이 더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감사하며 서로를 섬겨서 그리스도 예수의 뜻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우리 공동체에 일어나게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엡 4:15) 것입니다. 때로 사랑과 진리는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진실을 덮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진리는 사랑을 잠시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사랑과 진리가 함께 가야 하고 또한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진실은 때로 날카롭습니다. 때로 아픕니다. 그렇기에 사랑을 담아 표현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구실로 진실을 피해 가는 것도 잘못이지만, 진실을 위한다는 미명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할퀴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을 말하되 서로에게 덕이 되는 방식을 말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우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가 늘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훈련하고 연습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습관이 되고 성품이 되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습관과 성품이 형성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말로 인한 실수를 점차 줄여 가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약 3:8)라고 말하면서 말에 재갈을 물리듯 “혀에 재갈을 물리라”(약 3:3)고 권합니다. 나오는 대로 말하다 보면 악과 독을 쏟아 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옛 말에 ‘삼사일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마디 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과연 이 말이 저 사람에게 유익할까? 어떻게 하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노력할 때 우리 교회는 더욱 따뜻한 은혜의 품으로 만들어져 갈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가장 먼저 우리 자신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노력하십시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