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8.07.29 와싱톤사귐의교회 문화 세우기 1: 일찍, 먼저, 앞으로, 가운데로

제가 뉴저지에서 백인 교회를 섬길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50대 후반의 백인 부부가 예배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첫날부터 맨 앞 자리에 앉아서 반듯하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따뜻하게 인사하며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부부는 제 목회의 큰 기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멕시코에서 온 젊은 부부가 교회에 등록했는데 백인 부부가 늘 앉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처음 예배에 왔으니 그 자리가 다른 누군가의 ‘전용 자리’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 날 따라 그 백인 부부는 예배 시간에 약간 늦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던 저는 개회 찬송을 부르는 동안에 문을 열고 들어선 그 부부의 표정과 몸짓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항상 앉는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기색이었고, 주춤주춤 맨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예배 시간 내내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마자 그들은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예배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잊지 못합니다. 그 사건이 있기 이전까지 그 부부가 보여준 신앙적인 모습과 그 사건을 통해 드러난 그 부부의 모습이 너무도 대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자신들의
고정 좌석이 다른 사람에 의해 ‘점령’ 당한 것이 그토록 기분 상할 일이라는 말입니까? 과연 그분들에게 있어서 예배란 무슨 의미일까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서 왔다면 그런 것쯤은 초월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와 비슷한 사건이 교회에서 흔하게 일어납니다. 우리는 본성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편하게 느껴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심코 몸의 관성을 따르면 늘 같은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그 자리에 앉을 경우에 기꺼이 다른 자리로 가서 앉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늦게 오는 사람들에게 편하도록 작은 불편을 감수하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몇 주일 전부터 예배 사역부에서 “일찍, 먼저, 앞으로, 가운데로!”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예배의 기본은 10분전에 자리에 앉아 기도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위해 모였을 때 누가 나에게 다가와 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불편하지 않다면 가급적 앞 자리부터 채워 앉도록 노력하고, 자리에 앉을 때는 끝에 앉지 말고 가운데로 들어가 앉는 것도 큰 배려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해도 습관이 되면 고정 자리에 앉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예배사역부에서는 이러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예배 시작 5분 전까지 뒷자리를 막아 놓을 예정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늦어지는 교우들을 위해 비워 두고 일찍 오시는 분들은 앞 자리에 앉도록 청하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좀 더 집중된 예배를 드리고 배려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교우들께서는 이 의도를 이해해 주시고 기쁘게 따라 주시기를 청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