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8.05.06 나그네 인생길

저는 이 글을 일산의 어느 찻집에서 쓰고 있습니다. 지난 1일에 워싱턴 덜레스 공항을 떠나 인천 공항에 잘 도착했습니다. 치매가 깊어져 이제는 아무도 알아 보지 못하시는 어머님과 쇠약해 가시는 아버님을 찾아 뵙는 것이 이 여행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이번에는 결혼한 아들 부부를 인사 시키는 자리여서 더 특별합니다. 매 년 한 번씩 찾아 뵙는다 해도 앞으로 몇 번을 더 뵐 수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매 년 와 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수 년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 교우 들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입니다.

짧은 시간의 방문이니 가족이나 만나고 쉬었다 가면 좋겠는데, 번번이 그게 되질 않습니다. 꼭 필요한 초청에만 응하겠다고 다짐해도, 돌아 보면 지나쳤다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야 할 사람도 다 못 만나고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이민자들이 어느 정도는 다 공감하고 또한 겪는 일일 것입니다. 이번에도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조금 과한 듯합니다. 모든 사역을 잘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민을 작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이민자가 되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도 ‘나는 결국 돌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제 생각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결국 미국에서 인생을 마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이 더 좋아서 그렇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을 보면 그렇게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국에 대한 느낌에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결국 돌아올 내 고국’이 아니라 ‘나를 낳아 준 내 모태’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국을 대하는 마음이 덜 절박하고 덜 애틋합니다.

처음 유학 나올 때 만났던 어떤 분을 기억합니다. 어느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일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작별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공부를 마치면 다시 귀국할 것입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 질문이 저의 애국심을 묻는 것처럼 여겼던지 “틀림없이 돌아올 것입니다!”라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나와 같이 일한 사람들 중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보다 미국에 눌러 앉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김 선생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나라를 팔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말합니까? 다음에 누가 같은 질문을 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답하세요”라고 충고를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제가 속으로 얼마나 부끄럽게 느꼈던지요

히브리서 저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고향이 따로 있는 사람들”(히 11장)입니다. 이 믿음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 처하든 그곳을 고향 삼고 살아갈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궁극적인 충성의 대상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조국에 살고 있든 미국에 살고 있든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애국하는 길이며 또한 그것이 선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 가다가 언제고 부르시면 기쁨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는 이들의 인생길입니다. 그렇기에 이 땅 어디에서도 우리는 진정한 고향을 발견할 수 없고, 그렇기에 어디에서든 고향 삼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전에는 낯선 곳에서 지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고향 땅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제가 이제는 정말 나그네가 된 듯합니다. 문득 ‘나그네’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싶어 검색을 해 보니, “집 나간 애”라는 말이 변화된 것이라 하는군요. 나그네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다른 나그네를 만났을 때 가장 반갑고 또한 안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여러분을 그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