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7.04.23 생각하기 나름

우리 말에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그것에 대한 반응도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말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성립합니다. 어떤 사건 혹은 사물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것에 대한 태도가 전혀 달라집니다. 태도가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병을 ‘싸워 이길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병’(鬪病)이라고 표현합니다. 영어 표현에서도 질병에 대해 battle(전투)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투병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습니다. 전투를 좋아할 사람은 드뭅니다. 또한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절망에 빠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패잔병의 심정으로 마지막을 맞이 합니다.

투병 과정을 ‘싸워야 할 전투’가 아니라 ‘지나야 할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 있게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정은 걸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입니다. 치료 과정을 여정으로 보면 고통 중에서도 크고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기도 하고, 인생의 신비를 새롭게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동안 살아 오면서 몇 번의 수술을 받았고 지루한 회복 과정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치료 과정을 ‘전투’가 아니라 ‘여정’으로 본다면, 질병은 ‘원수’가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죽을 때까지 매일 직면해야 하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원수로 여기기보다는 친구로 여기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다 할 수 있습니다. 원수로 여기면 매일의 삶이 전쟁이 되고, 친구로 여기면 매일의 삶이 고통 중에서도 즐거운 여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질병 혹은 장애를 대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시니어 교우들 중에 갑작스러운 사고 혹은 질병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젊은 분들 중에도 오래도록 질병과 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중에 지난 주에 읽은 책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평생토록 사용해 오던 사지 중 하나가 어느 날 말을 듣지 않으면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절망감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삶의 기쁨은 주어집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그것을 차단하고 구덩이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 어느 책에서 읽은 경구가 생각납니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첫 번째로 할 일은 더 깊이 파고 들어가기를 멈추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의사가 “더 이상 손 써 볼 방도가 없다”고 해도 인생은 여전히 고귀한 선물이요 아직도 걸어가야 할 신비한 여정입니다. 다른 누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미래에 그런 상황을 직면해야 할 저 자신을 위해 미리 해 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