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7.03.19 서로를 위한 배려

몇 주일 전부터 저는 설교 말미에 찬양을 부르곤 했습니다. 찬송가에서 골라 부르기도 했고, 현대 찬양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설교를 통해 영적 갈망이 일어난 상태에서 찬송을 부르며 성령의 터치를 구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진실한 회개는 언어와 논리로 불러 일으킬 수 없습니다. 성령의 ‘깨닫게 하는 은총’(convicting grace)이 임할 때에만 진정한 회개가 일어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으려는 의지가 내 안에서 발동한다 해도 성령의 터치가 없으면 ‘믿어지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교 끝에 찬송을 부르며 성령의 임재를 구했던 것입니다.

이런 변화에 불편을 느끼는 교우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더 많은 교우들께서 반기셨습니다. 마지막에 부르는 결단 찬송도 좋지만, 설교 직후에 마음에 일어난 감동을 찬송으로 담아 부르고 기도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자주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항상 그렇게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설교 준비를 해 가면서 제 마음에 떠오르는 찬양이 있고 그 찬양을 부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9년 동안 현대 찬양 중심의 ‘열린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니어 교우들 중에는 그 예배 형식에 불편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형식이라는 이유로 참고 견뎌 주셨습니다. 이제는 예배 형식이 전통 예배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열린 예배에 익숙했던 교우들이 이 변화에 대해 약간의 우려를 품었습니다. 다행히도 변화된 예배 형식을 대다수의 교우들께서 반겨 주셨습니다. 전통 예배라고 해서 따분하고 침체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배 중에 마음에 더 가까이 와 닿는 찬양을 부르고 싶은 열망은 그대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매월 마지막 토요일 새벽 예배를 찬양 예배로 드리고 있는데, 새벽 예배에 나오는 분들이 한정되어 있으니 그 필요가 채워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많은 분들이 최근의 변화에 큰 해소감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전통 예배의 틀은 그대로 유지할 것입니다. 그 틀과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현대 찬양을 부르도록 배려하겠다는 뜻입니다. 현대 찬양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서는 가사를 보시며 기도로 삼으시면 됩니다. 이 변화가 교우님들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