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2017.02.12 목회자 자녀로 산다는 것

저는 제 부친이 교사로 계시던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다른 선생님 자녀들은 학교에서 특권층처럼 행동했고, 그 아버지들도 자식들의 행동을 묵인하거나 두둔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친은 호되게 꾸중을 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면 집에 와서 더 크게 혼났습니다. 제 부친은 ‘고산골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분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때 저의 목표는 ‘드러나지 않기’였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투명 인간처럼 조용히 숨어 지냈습니다. 그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습관이 청소년기에 저를 아주 힘들게 했습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고, 수업 시간에 발표할 때면 식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 제가 목사로 일하고 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반면, 제 아내는 목사의 딸입니다. 시집 오기 전까지 교회 마당에 있는 사택에서 살았습니다. 교인들이 늘 오고 가는 집에서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교인들의 시선과 험담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는 어릴 적부터 집안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습니다. 주일 학교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마음껏 떠들어도 제 아내는 입을 다물고 웃기만 했습니다. 또한 담임목사의 딸이라는 중압감이 그를 눌렀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방에 높은 벽을 쌓아 놓고 그 안에 숨어 지냈습니다. 그 벽을 허물고 세상으로 나와 마음에 있는 것을 거침없이 내어 놓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 제 아내의 모습도 기적입니다.

이번 주에 한국에서 꿈마실팀이 우리 지역을 방문합니다. 비전 투어(Vision Tour)라는 영어를 예쁜 우리 말로 바꾼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의 미자립교회(교인 수가 적어서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교회) 목회자들의 자녀들입니다. 한국 목회자멘토링 사역원에서는 어려운 환경 중에서도 바르게 목회하는 젊은 목회자들을 선별하여 그 자녀들에게 무료로 3주 동안 미국 여행을 시켜 줍니다. 한국의 후원 교회들에서는 여비를 지원하고 미국의 교회들은 숙식을 제공함으로 가능해진 사업입니다. ‘목자’(목회자 자녀) 혹은 ‘선자’(선교사 자녀)로 자라면서 억압된 마음을 풀게 해 주고 상실감을 보상해 주며 꿈을 심어 주려는 것입니다.

재정적인 제약으로 인해 한 해에 열 명에게만 혜택을 줍니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질까 싶은데, 벌써 30명이 이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이 여행을 통해 마음을 회복하고 소명감을 찾는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투자입니다. 꿈마실팀을 맞아 주시고 재워 주시고 먹여 주시는 모든 교우들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듯 그늘지고 뒤쳐진 사람들을 품고 밀어주는 일에 더 열심을 내면 좋겠습니다.